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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겨울 이야기 - 윌리엄 셰익스피어 作, 이윤기 이다희 옮김, 달궁

YS-Prajna 2014. 9. 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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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공군 방공관제사령부 정훈공보실에서 '더 나은 더 좋은 공감연극'을 위해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연출 팀이고, '네버엔딩 군스토리'의 각본 제작과 음향 감독을 맡았다. 9월 휴가중에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고 싶어서 집에 있던 것을 집어와서 읽게 되었다. 대본을 전부 작성한 뒤에 읽은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이후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겨울 이야기는 보헤미아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이뤄진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지은 '아시모프의 셰익스피어 길잡이'에 의하면, 셰익스피어 작품은 문화적,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종합하여 총 4가지 분류로 나뉜다고 한다. 그리스 관련 작품은 8개, 로마는 5개, 이탈리아는 11개, 영국이 14개다. 겨울이야기는 그리스 희곡으로 분류된다. 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원용했기 때문이다. 헤르미오네는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인 헬레네의 딸이었고, 아우톨뤼코스는 헤르메스와 인간 사이의 혼혈로 도둑의 신이다. 안티고누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누이인 안티고네의 남성형 이름이다. 또한 전체적인 줄거리가 그 당시 영웅들의 이야기중 다수를 차지하는 기아 모티프에서 비롯되며 결말 부분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최근 고전을 많이 읽으면서 내 글쓰기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겨울 이야기'를 통해, 위대한 작가도 고전이나 설화등에서 영감을 받고 심지어 원용까지 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안심했다. 꾸준한 독서와 공부를 통해 동,서양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배경 지식이 풍부해진다면, 언젠가 나도 셰익스피어와 같이 다양한 소재에서 글을 이끌어낼 수 있다. 연극 준비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잠도 많이 못자며 생활관에서 있는 시간이 거의 없지만, 짬을 내서라도 책을 읽도록 하자.


<노트>

p.13

셰익스피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가가 아니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호메로스로부터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신화 작가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뤼피데스 같은 그리스 비극 작가들, 헤로도토스, 플루타르코스 같은 역사가들로부터 흘러온 길고 깊은 강이라고 생각한다. 도도하게 흐르는 서양 문학의 강이라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일은 그 강으로 풍덩 뛰어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번역투의 '~라고 생각한다'가 거슬리지만, '겨울 이야기'를 읽은 뒤에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서 적었다.


p.37

레온테스의 대사 中

욕정이여, 그대의 뜻이 심장을 칼질하는구나.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고, 믿어지지 않게 꿈같은 것과도 소통하고, 실재하지 않는 것과도 수작하고, 공허와도 동무하는 그대가 이제는 실재하는 것과도 수작하는구나. 그것도 정도에 넘치게 수작하는구나. 바로 내 눈앞에서! 그러니 내 머리에 광증이 똬리를 틀고 내 이마에서는 뿔이 솟을 수밖에!

-간통의 욕정을 이리도 멋있게 표현하다니.


p.115

시간time의 대사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일이 더러 있기는 하나 대체로 누구에게든 시련을 안기는 나 시간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기도 해서 선한 사람들이나 악한 사람들에게 두루 기쁨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자, 이제 저에게 맡겨 주시면 시간의 이름으로 저의 날개를 펼쳐 볼까 합니다. 이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언급 없이, 16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건너뛸 것이나 세월이 너무 빨리 흘렀다고 저를 탓하지는 마십시오. 법칙을 깡그리 뒤집어엎는 것은 나의 권한입니다. 단 한 시간 동안 관습을 뿌리내리게 하는 일, 그 관습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일 또한 그렇습니다. 질서가 서기 전인 태초의 내 모습이나, 늘 한결같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법칙과 관습을 만들어 낸 시대도 지켜보았고 오늘을 지배하는 관습도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오늘날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도 낡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케케묵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듯이 말이지요.

 여러분이 참고 기다려 주신다면, 저는 제 모래시계를 뒤집어, 여러분이 그동안 잠이라도 자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도록, 이 연극을 빠르게 진행시키겠습니다. (중략)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유쾌하지 못했다면 양해해 주시고, 불쾌했던 것은 아니지만 재미가 좀 없었다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이 시간의 이름으로 감히 말씀드립니다.

-'시간'이라는 존재를 이처럼 극적으로 사용할 줄이야. 특별한 나래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작품은 시간 및 장소 변경이 깔끔하다. 거기에 금상첨화로, 페르디타와 플로리젤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까지의 과정을 유려하게 넘겼다는 점이 놀랍다.

 


p.129

플로리젤의 대사

 그런 염려 말고 축제나 즐깁시다. 신들께서도 사랑을 위해서는 짐승의 탈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어요. 제우스 신은 황소로 몸을 바꾸고 "음매"하고 우셨고, 포세이돈 신은 숫양으로 몸을 바꾸고 "매에"하고 우셨으며, 휘황찬란한 태양신 아폴론은 지금의 나 같이 초라한 시골 청년으로 몸을 바꾸기도 했어요. 신들이 그렇게 몸을 바꾸고 얻은 여인도, 내가 사랑하는 여인만큼은 아름답지 못했고, 동기도 나처럼 순수하지 못했어요. 그것은 나의 욕망이 나의 명예보다 크지 않고, 나의 열정이 그대에게 한 약속보다 더 뜨겁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이런 말을 하면 벌을 받지만, 이 작품에선 당연히 그렇지 않는다. 플로리젤이 순수한 사랑에 대해 잘 표현했다. 근데 외모에서 먼저 끌리게 되면 그걸 순수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의 외면에 이끌린 다는 것은 본능에 의한 것이요, 본능에 의한 것은 결국 욕정에서 비롯된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플로리젤의 사랑도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p.148

플로리젤의 대사

 어르신, 제가 잘 아는데요, 저의 연인은 그렇게 하찮을 것들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답니다. 저의 연인이 받고 싶어하는 것은 제 가슴속에 꼭꼭 숨기고 자물쇠까지 꼭꼭 채워 잠그던 선물인데요, 저는 벌써 그것을 선사했답니다. 건네지 않았을 뿐이지만요.

-멋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허영심 없다는 것도 부럽고, 저렇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럽다.


p.235

 고대 신화에 대한 약간의 소양 없이는, 각색되거나 줄거리가 원용된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고대 신화의 냄새를 맡아 낼 수 없듯이,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제목이 바뀌거나 각색되거나 줄거리가 원용된 현대의 작품에서 셰익스피어의 냄새를 맡아 낼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우리 것처럼 누리는 유럽의 문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그리스의 희,비극을 거치고 오비디우스와 플루타르코스를 거쳐 셰익스피어에 이르러 있다. 이것이 문화다. 인간의 꿈과 진실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는 세월이 가도 쉬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셰익피어의 시대일 수도 있다.

-고전을 읽어야 되는 이유. 내게 다시금 의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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